☞ 마른 뼈 골짜기(37:1~10)
하나님은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려가셨습니다. 그곳은 치열한 전투로 몰살된 시신들이 마른 뼈가 되어 널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절)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실낱 같은 희 망마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에스겔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3절). 인간의 편에서 보면 절망뿐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희망이 있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믿음의 행동을 요구하셨습니다. ‘대언하라 …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어떤 절망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을 소멸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들로 군대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생명의 샘물을 퍼 올리시는 분입니다.
☞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37:11~14)
하 나님의 말씀은 결코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고통 당하고 절망하는 그분의 백성을 향한 사랑의 권면입니다. 말씀은 생명이고 구원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포로 생활로 인해 지쳐 자포자기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덤 같은 현실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명예를 걸고 그분의 백성을 향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결코 식언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서라도 그분의 백성을 절망에서 건져 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마른 뼈처럼 느껴질 때
‘마른 뼈’의 심정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잔잔할 날이 없는 직장 생활, 가정의 짐이나 자녀의 반항, 고통으로 신음하는 몸 등이 모두 마른 뼈의 상태를 초래한다. 삶의 예기치 못한 반전, 안팎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혹평도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간다. 그럴 때 우리는 기쁨이나 희망 없이 그냥 질질 끌려 다닌다. 그러면 성장이나 대인 관계를 위해 노력하려는 의욕도 상실하게 된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지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날 때면 우리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고이 품어 주시며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을 그려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루를 사는 중에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지친 호흡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이런 잠깐의 시간들이 우리를 생명의 호흡 되시는 하나님과 이어 준다. 마른 뼈 안에 생명이 숨어 있다고 믿기가 항상 쉽지만은 않다. 마른 뼈가 다시 춤추게 될 것을 믿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인내하는 것도 그중에 하나다.
우리는 마른 뼈의 심정에 부딪힐 때마다 인내와 희망을 품고 죽음의 골짜기에 들어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창조하도록 도우신다.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낡은 틀에 머물게 할 필요가 없다. 생기의 창조자, 생명을 주시는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자. 이 경험은 우리를 하나님의 심장 속으로 더 깊이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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