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7, 2008

<창세기 13:1 - 13:18> 13장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하나님으로 만족할 것인가?

1. 회복의 길. 애굽에서 겪은 일은 아브라함에게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벧엘 지역으로 돌아오는 그의 여정(3,4절)은 호렙으로 돌아오는 엘리야의 여정(왕상 19:8-18)처럼 순례의 성격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위의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과의 사귐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은 요한일서 1:9에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새로이 회복했다는 것을 다음 두 가지로 나타냈다. 1)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관심(7,8절). 아브라함은 만일 ‘골육’인 롯과 자신이 분쟁을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될 것을 우려했다(비교. 느 5:9). 2)평화에 대한 그의 관심(8,9절). 자기와 롯이 다투면 각자에게 속한 사람들 사이의 반목(7절)이 얼마나 쉽게 싸움과 증오로 비화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권리는 아브라함에게 있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약속하신 대상은 롯이 아니라 오직 아브라함이었다. 더구나 족장 사회에서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는 쉽게 롯에게 떠나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서 자기 권리와 재산을 양보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5:9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실 때 깊은 뜻을 가지고 하셨다. 사람은 화평을 도모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눈여겨 보라(삼상 2:30). 하나님은 롯이 떠나자마자 이미 하신 약속들을 재확증해 주셨다(14-17절). 그 약속에는 롯이 막 차지하러 떠난 그 영역도 포함되었다(14절, ‘서쪽’). 비록 아브라함은 욕심이 많은 롯과의 유대 관계를 잃었으나, 관대하신 하나님과의 사귐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다.

2. 멸망의 길. 롯은 자원해서 아브라함을 따라나섰을 것이다(12:4). 그러나 그는 삼촌과는 달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다름없이 부(富)를 부려 쓸 능력이 없었다. 아브라함의 제의를 받는 순간 그의 뇌리에는 저열한 물욕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목초지를 삼촌에게 양보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택하는 그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악명 높은 소돔(13절)의 악한 영향을 견뎌 낼 능력이 없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타협은 솔로몬(왕상 11:1-8)과 데마(딤후 4:10)의 경우처럼 그의 몰락을 넉넉히 예고해 주었다. 헤브론(18절)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km쯤 떨어진 지역이다. 아브라함은 의식적으로 유혹의 장소에서부터 점점 멀리 이동해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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