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은 분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흉년을 만므로 살길을 찾아 애굽으로 내려 갔었다.거기서 그는 하마터면 아내를 빼앗길뻔 하였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로 아내를 도로 찾았고 생명도 건 졌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찾아 시험에 빠진 아브라함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러므로 애굽왕 바로를 통하여 그에게 많은 물질을 주셨다. 창13:1-2에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쌔...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했음을 본다. 은금만 아니었다. 많은 종들고 데리고 나왔다. 그때의 아브라함의 생 활이 얼마나 풍부하였는지는 그가 318명의 식객(군인 혹은 종)을 거느리고 있있었던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창14:14참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물질을 주시되 풍성히 주셨다. 아! 그러나 슬프다. 아브라함에게는 또 다른 근심이 닥쳤다. 그것은 물진의 풍부로 오는 근심이었다. 창13:7에 "아브라함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그들의 소유가 많아서....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 도 그 땅에 거하였느니라" 했는데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는 그만 물질의 풍부 때문에 오히려 싸움이 생겼다 일이다. 어진 아브라함에게는 큰 근심이요 슬픔 이 아닐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그 조카 롯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날 때 자기의 아내와 더불어 오직 롯 만을 데리고 떠났었다. 이 한 가지만 보아서도 그가 롯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알 수 있다. 롯도 그 삼촌을 그렇게 따랐고 순종했었다. 사실 롯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었다. 할아버지 데라 보다도 먼저 죽었다.
(창11:2728).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잃은 조카를 아들 같이 여겼을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에 그 나이는 벌써 75세였다고 했다. (창12:4). 그렇게 늙도록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있어 롯은 말이 조카이지 사실은 아들과 다름이 없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 아니가.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롯은 어 디를 가나 기쁨과 괴로움을 같이 했었다.
그 랬건만 이제 싸움이 생겼다. 더구나 이방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같이 있는 (창13:7 하) 그 앞에서 피차에 다툼이 생겼다. 이 얼마나 창피한 비극 인가. 이방 사람들의 앞에 하나님의 택한 가정의 집안 싸움이 벌어졌으니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으랴! 사실 [은금]이란 말이 성경에 여러번 나오 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은 그 맨 첫번 째이다.
은금이란 말이 나올 때, 그곳에 싸움이란 말이 따라 나왔다.은금이 있는 곳에 싸움이 따르다니! [육축]이란 말도 창세기 1장에서 그것을 창조하셨다는 말이 한번 나온 후(창1:25) 지금 비로소 나오는 말이다. 물론[풍부]라는 말도 처음 나온다. 은금과 육축이 풍부한 그곳에 화평이 아니라 싸움이라면 물질이란 자 칫하면 얼마나 추악한 것인가!
옛날이나 지름이나 재물이란 그 소유자들을 많은 근심으로 찌르는 것을 볼 수 있다(딤전6:10). 아브라함에게는 이제 그 재물 때문에 새로운 근심이 생겼다. 롯도 아브라함과 같은 재물의 복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육축을 기르기 위한 풀밭을 놓고 저들의 사환들은 서로 다투게 됐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롯과 같이 살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롯과 작별하기 위하여 그를 불렀다. 창13:89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르되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라.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것은 아브라함의 말이었다. 이 얼마나 슬픈 선언이었던가. 그러나 이제 그에 대한 롯의 태도를 보라.
창13:10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을 바라본즉 물이 넉넉하니....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더라" 이것은 롯의 요단 뜰을 바라 볼 때의 흡족한 마마음을 묘사한 말이다. 그는 네가 원하는 어느 곳이든지 자유로 택하라는 그 말에 그 마음은 만족했다. 여기 여호와의 동산 같다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기름진 동산 같다는 말이다. 본래 고대 히브리인들은 가장 훌륭한 것, 가장 큰,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할 때는 흔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렸다.
호렙산, 시내산 헬몬산 같은 큰 산들을 가리켜 "여호와의 산"이라 했고, 큰 나무는 "여호와의 나무"라고도 했다(시104:16).
롯은 요단 뜰을 바라 볼 때 마음이 흡족했다. 옛날 에덴 동산도 네 줄기의 물 근원이 있었다. 롯이 바라 본 그 땅고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의 동산 같다고 했 다. 그 뿐만 아니라 "애굽 땅과 같다"고도 했다.
이 르써 롯의 마음은 아직도 애굽에 있었음을 본다. 성경에서 보는 대로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돌아온 후 다시는 애굽을 사모한 흔적이 없었으나 롯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치 옛날 출애굽에 나온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사모한 것과도 같았다 (출16:3). 슬프다. 롯은 그 푸른 풀밭, 기름진 동산, 그러나 그 속에 썩어져 가는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음을 깨닫지 못했었다.
창13:13에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했음을 본다.
그러나 혈육의 인간 롯은 그런 죄악에는 무관심이었다. 그렇게도 관영한 소돔의 죄악을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사람이 "물질에 눈이 어두우면 신령한 것은 보지 못하는 법이다. 이로써 롯은 아직도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는 세속적 신자의 그림자 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같이 택함을 입고 부름을 받아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그림자임에는 틀림없다. 결코 불신자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베드로 전서에 보면 롯을 가리켜 이상하게도 의인이라 했다.
그 말은 곧 그도 택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세상을 더 사랑하는 혈육의 성도였다. 신령한 것에는 눈이 어두운 성도였다.
우리는 각자 자기를 반성하며 생각해 보자. 그는 먼저 푸른 요단을 바라 보았다. 다음은 탐심을 따랐다. 자기를 그처럼 사랑하던 아브라함에 대한 의리도 버렸다. 결국은 소돔에 장막을 치고 아주 주저 앉아 버렸다. 이것은 롯이 택한 길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다. 세상의 물질을 보고 탐심이 생길 수는 있 다. 그러나 곧 돌아서야 한다. 롯과 같이 거기에 앉아버리지 말아야 한다.
자, 그후 롯은 어떻게 되었던가. 곧 불의 심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징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먼저 징계하시는 법이다. 롯에기도 먼저 징계가 있었다. 창세기 14:1이하에 보면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이 인근의 네 왕들과 연합하여 소돔과 고모라 땅을 쳐왔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은 약탈 됐고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혔다. 롯도 그렇게 되었다. 물론 그의 처자도, 재물도 다 빼앗겼다.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 였다.(창14:12).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318명의 자기의 사병을 거느리고 원수들을 쫓아갔다. 생명을 걸고 싸웠다. 자기를 버리고 간 그 롯을 위 하여 드디어 롯도 구원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부녀들과 다른 사람들도 도로 찾았다 (창14:14-16). 자, 이 때에 롯은 아주 소돔을 떠났어야 했었는데 무 엇이 그렇게도 연연하여 거기에 다시 주저 앉아 버렸다는 말인가. 그 풀밭이 그렇게도 아까왔고 애굽 땅 같이 기름진 그 땅이 그렇게도 좋아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침내 불심판을 받게 될 때에야 비로소 도망쳐 겨우 구원을 얻게 되었다. 롯의 아내는 롯보다 더 한층 세속적이었다. 그는 불타는 소돔을 떠나는 것을 그처럼 아쉬워 하다가 마침내 아주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남편이 잘 못 믿으면 아내라도 잘 믿었어야 할 텐데 그는 그 남편보다도 더 했으니 무슨 소망이 있었겠는가. 롯은 구원을 얻었으되 겨우 불 가운데서 얻은 구 원이었다. 말세의 성도들도 롯과 같이 구원은 얻되 불 가운데서 겨우 얻는 구원이 있으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고전 3:12-15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격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격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했음을 본다.
말세에 롯과 같은 성도들이 많을 것을 경고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안목의 정욕을 따라서 세상으로만 나가지 말 것이다. 비록 잘못 갔더라도 곧 돌 이킬 것이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한다.
롯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가 되는 징계로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물질을 더 사랑하던 자의 결과가 어떠함을 롯에게서 배워야한다.
Wednesday, August 27, 2008
<창세기 13:1 - 13:18> 13장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하나님으로 만족할 것인가?
1. 회복의 길. 애굽에서 겪은 일은 아브라함에게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벧엘 지역으로 돌아오는 그의 여정(3,4절)은 호렙으로 돌아오는 엘리야의 여정(왕상 19:8-18)처럼 순례의 성격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위의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과의 사귐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은 요한일서 1:9에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새로이 회복했다는 것을 다음 두 가지로 나타냈다. 1)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관심(7,8절). 아브라함은 만일 ‘골육’인 롯과 자신이 분쟁을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될 것을 우려했다(비교. 느 5:9). 2)평화에 대한 그의 관심(8,9절). 자기와 롯이 다투면 각자에게 속한 사람들 사이의 반목(7절)이 얼마나 쉽게 싸움과 증오로 비화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권리는 아브라함에게 있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약속하신 대상은 롯이 아니라 오직 아브라함이었다. 더구나 족장 사회에서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는 쉽게 롯에게 떠나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서 자기 권리와 재산을 양보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5:9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실 때 깊은 뜻을 가지고 하셨다. 사람은 화평을 도모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눈여겨 보라(삼상 2:30). 하나님은 롯이 떠나자마자 이미 하신 약속들을 재확증해 주셨다(14-17절). 그 약속에는 롯이 막 차지하러 떠난 그 영역도 포함되었다(14절, ‘서쪽’). 비록 아브라함은 욕심이 많은 롯과의 유대 관계를 잃었으나, 관대하신 하나님과의 사귐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다.
2. 멸망의 길. 롯은 자원해서 아브라함을 따라나섰을 것이다(12:4). 그러나 그는 삼촌과는 달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다름없이 부(富)를 부려 쓸 능력이 없었다. 아브라함의 제의를 받는 순간 그의 뇌리에는 저열한 물욕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목초지를 삼촌에게 양보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택하는 그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악명 높은 소돔(13절)의 악한 영향을 견뎌 낼 능력이 없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타협은 솔로몬(왕상 11:1-8)과 데마(딤후 4:10)의 경우처럼 그의 몰락을 넉넉히 예고해 주었다. 헤브론(18절)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km쯤 떨어진 지역이다. 아브라함은 의식적으로 유혹의 장소에서부터 점점 멀리 이동해 간 것일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눈여겨 보라(삼상 2:30). 하나님은 롯이 떠나자마자 이미 하신 약속들을 재확증해 주셨다(14-17절). 그 약속에는 롯이 막 차지하러 떠난 그 영역도 포함되었다(14절, ‘서쪽’). 비록 아브라함은 욕심이 많은 롯과의 유대 관계를 잃었으나, 관대하신 하나님과의 사귐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다.
2. 멸망의 길. 롯은 자원해서 아브라함을 따라나섰을 것이다(12:4). 그러나 그는 삼촌과는 달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다름없이 부(富)를 부려 쓸 능력이 없었다. 아브라함의 제의를 받는 순간 그의 뇌리에는 저열한 물욕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목초지를 삼촌에게 양보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택하는 그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악명 높은 소돔(13절)의 악한 영향을 견뎌 낼 능력이 없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타협은 솔로몬(왕상 11:1-8)과 데마(딤후 4:10)의 경우처럼 그의 몰락을 넉넉히 예고해 주었다. 헤브론(18절)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km쯤 떨어진 지역이다. 아브라함은 의식적으로 유혹의 장소에서부터 점점 멀리 이동해 간 것일까?
Wednesday, August 20, 2008
다윗과 아비가일의 만남 - 루벤스

1630년 루벤스는 스페인과 영국에서 그의 외교적 기량을 한껏 발휘한 후, 고향 안트워프로 돌아오자 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 그의 관심이었던.. 평화에 대한 갈망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무엘상 25장
그림 오른쪽이 나발을 치기위해 군사를 데리고 출발한 다윗과 그무리 (13절), 왼쪽은 그것을 막기위해 급히 음식을 준비해 다윗을 찾아온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과 그 일행이다 (18절)
그림 한 가운데, 두 남녀가... 다윗과 아비가엘.. 두 사람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 그들의 대화에 집중되고 있다.
"내 주여! 나발을 개의치 마시고..여종이 주께 가져온 예물을 받으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소서...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리니...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고 친히 보복하신 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게 하소서" 아비가일은 간절히 탄원하고...
"네 지혜를 칭찬하니,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내가 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다윗은 그의 청탁을 받아들인다.
한여인의 지혜가 가져온 평화!그리고 그 지혜를 기억한 다윗은.. 나발이 죽자 아비가일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한다.
1627년에서 1630년 사이에 외교관으로 스페인과 영국을 오갔던 루벤스, 평화를 위해 애썼던 그의 마음이.. 이 작은 그림에 스며있다. 그리고... 우연이었을까? 다윗이 아비가일을 맞이 하듯이 루벤스도 이 그림을 그린 그해에 두번째 부인 엘레나를 맞아들인다. 첫 부인과 사별한지 4년만에.. 다윗이 지혜의 여인 아비가일을 만난 이 그림은 이렇게 루벤스의 사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잠언 (14:3)
<사무엘상 25:1 - 25:44> 25장 아비가일
사무엘이 죽었다. 이 소식은 이스라엘 전체에 삽시간에 퍼졌다.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지파동맹의 시대는 이 사무엘-이스라엘 역사에서 두 시대의 가교 역할을 했다-의 죽음과 함께 종식된다. 하나님께서 극히 소수에게 이와 같은 일을 맡기신다. 사무엘은 과거의 위대한 가치 기준들을 엮어서 새로운 왕국시대를 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집에 장사하는 것은 이상스럽게 생각할 것이 못 된다. 사람을 자기 집 마루 밑에(도제나 석재에 넣어) 장사하였다는 것이 문헌상이나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이 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세 사람의 삶과 관련이 있다: 부유한 지주 나발과 그의 아내 아비가일과 유다 남쪽 지역 주민들의 보호자 다윗. 이 장에서 언급하는 갈멜은 지중해를 굽어 보고 있는 갈멜산이 아니다(참조.15:12). 이것은 헤브론과 브엘세바 사이 남쪽 깊숙이 자리잡은 곳이다. 성경은 다윗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나발의 기질을 적절히 묘사한다(25절).
용모뿐만 아니라 지혜에 있어서도 빼어난 아비가일은 고대 풍습에 따라 자기가 다윗을 만나러 가기 전에 예물을 먼저 보내고 있다. 이 상황이 그가 동굴에서 사울을 만나던 때와 다른 것이 없으나 지금은 복수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아비가일의 말은 이런 점에 관해 예언적인 성격이 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행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악하고 무모한 짓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손수 잘못을 바로잡으실 것이며 다윗에게 멋진 미래를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그의 통찰과 용기에 깜짝 놀랐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보내어(32절) 자기로 하여금 악을 행치 않게 막으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다윗의 성품에 대해 더 깊이 통찰하게 된다. 그는 그의 위대성과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도 불구하고 결코 완전한 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우리는 또한 그가 추방당한 자(an outlaw)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를 불러서 통치하게 하실 백성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책임성 있게 행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건이 우리의 뜻대로 풀려 나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사건을 우리 마음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향하신 사랑과 염려의 또 다른 한 면을 보여 준다. 우리는 모든 일이 합력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실감케 된다. 이 사실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조명해 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셨으며 어리석고 잘못된 일로부터 우리를 지키셨는지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이 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세 사람의 삶과 관련이 있다: 부유한 지주 나발과 그의 아내 아비가일과 유다 남쪽 지역 주민들의 보호자 다윗. 이 장에서 언급하는 갈멜은 지중해를 굽어 보고 있는 갈멜산이 아니다(참조.15:12). 이것은 헤브론과 브엘세바 사이 남쪽 깊숙이 자리잡은 곳이다. 성경은 다윗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나발의 기질을 적절히 묘사한다(25절).
용모뿐만 아니라 지혜에 있어서도 빼어난 아비가일은 고대 풍습에 따라 자기가 다윗을 만나러 가기 전에 예물을 먼저 보내고 있다. 이 상황이 그가 동굴에서 사울을 만나던 때와 다른 것이 없으나 지금은 복수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아비가일의 말은 이런 점에 관해 예언적인 성격이 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행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악하고 무모한 짓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손수 잘못을 바로잡으실 것이며 다윗에게 멋진 미래를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그의 통찰과 용기에 깜짝 놀랐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보내어(32절) 자기로 하여금 악을 행치 않게 막으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다윗의 성품에 대해 더 깊이 통찰하게 된다. 그는 그의 위대성과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도 불구하고 결코 완전한 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우리는 또한 그가 추방당한 자(an outlaw)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를 불러서 통치하게 하실 백성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책임성 있게 행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건이 우리의 뜻대로 풀려 나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사건을 우리 마음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향하신 사랑과 염려의 또 다른 한 면을 보여 준다. 우리는 모든 일이 합력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실감케 된다. 이 사실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조명해 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셨으며 어리석고 잘못된 일로부터 우리를 지키셨는지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Tuesday, August 19, 2008
Monday, August 18, 2008
Friday, August 15, 2008
You raise me up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Tuesday, August 12, 2008
<창세기 39:1 - 39:23> 39장 애굽에서의 요셉
보디발(1절)은 ‘프라(태양신)가 준 자’라는 뜻의 보디베라를 히브리어로 줄여 쓴 이름인 듯하다. 그가 ‘시위대장’으로 맡은 주요 임무는 감옥 체제를 관장하는 일었다. 아마 바로의 호위 책임도 맡았던 것 같다. 이때의 바로는 힉소스 왕조(BC 1720-1570) 초기에 속하는 왕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힉소스 왕조는 애굽 본토인들이 아니라 셈족들로서, 애굽의 다른 셈족들에게 상당한 호의를 베풀었다. 이 사실은 훗날 바로가 야곱의 가족을 후대하는 장면을 대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이다.
이 장의 표면에는 불행이 깔려 있다. 이미 형들에게 버림을 받고 노예로 팔려 온 요셉은 애굽에 와서도 성공과 재앙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요셉은 모함을 받고(보디발이 사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자기 부인의 고소를 그대로 신뢰할 수 없었음을 암시해 준다)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재앙도 따라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장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는 구절에 있다(2-6,21-23절). 요셉은 이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거짓 고소를 당하고도 잠잠할 수 있었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거듭되는 불행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의 성품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경험으로 다듬어졌다. 하나님께서 급작스런 불행으로 충격을 당한 그를 실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나 주셨던 것이 분명하다. 37장과 비교할 때 요셉의 인격은 많이 변했다. 그는 제한된 임무에 충실함으로써(2,22절) 더 큰 임무도 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가 생활로 나타낸 증거에는 명백한 소양이 있었다(3,23절). 그러므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실 때 나타나는 변화를 외부 환경과 관계없이 늘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를 주님과 분리해 놓을 정도로 좁은 역경의 길은 없다. 세상의 참 빛을 가릴 만큼 캄캄한 밤은 없다. 우리의 인격을 풍요롭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실 수 없는 상황은 없다.
‣주(註):1절)‘이스마엘 사람’은 미디안 사람이라는 말과 번갈아 쓰였다(비교. 37:25,28;삿 8:24). 미디안 사람이 그들의 민족으로서의 소속을 가리킨다면, 이스마엘 사람은 유목민이자 떠돌아다니는 상인이라는 그들의 직업을 가리킨다. 6절)애굽 사람들에게는 히브리 사람들처럼 음식에 관해서 엄격한 법칙이 있었다. 14절: ‘히브리’라는 말을 쓴 데에는 천시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이 장의 표면에는 불행이 깔려 있다. 이미 형들에게 버림을 받고 노예로 팔려 온 요셉은 애굽에 와서도 성공과 재앙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요셉은 모함을 받고(보디발이 사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자기 부인의 고소를 그대로 신뢰할 수 없었음을 암시해 준다)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재앙도 따라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장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는 구절에 있다(2-6,21-23절). 요셉은 이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거짓 고소를 당하고도 잠잠할 수 있었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거듭되는 불행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의 성품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경험으로 다듬어졌다. 하나님께서 급작스런 불행으로 충격을 당한 그를 실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나 주셨던 것이 분명하다. 37장과 비교할 때 요셉의 인격은 많이 변했다. 그는 제한된 임무에 충실함으로써(2,22절) 더 큰 임무도 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가 생활로 나타낸 증거에는 명백한 소양이 있었다(3,23절). 그러므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실 때 나타나는 변화를 외부 환경과 관계없이 늘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를 주님과 분리해 놓을 정도로 좁은 역경의 길은 없다. 세상의 참 빛을 가릴 만큼 캄캄한 밤은 없다. 우리의 인격을 풍요롭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실 수 없는 상황은 없다.
‣주(註):1절)‘이스마엘 사람’은 미디안 사람이라는 말과 번갈아 쓰였다(비교. 37:25,28;삿 8:24). 미디안 사람이 그들의 민족으로서의 소속을 가리킨다면, 이스마엘 사람은 유목민이자 떠돌아다니는 상인이라는 그들의 직업을 가리킨다. 6절)애굽 사람들에게는 히브리 사람들처럼 음식에 관해서 엄격한 법칙이 있었다. 14절: ‘히브리’라는 말을 쓴 데에는 천시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Monday, August 11, 2008
리챠드 포스터 (Richard Foster)의 영성훈련
Ⅰ. 개인 훈련 - 내면화 훈련
나와 하나님과의 은밀한 가운데 나누는 교제로서,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하나님앞에 나홀로 서서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앙망하는 훈련이다.
(1) 공부훈련 (말씀훈련)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며,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하며,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신다.
* 성경말씀을 훈련하는 접근 방법
① 지식훈련 -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습득하여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의 교훈과 진리를 바로 배워 그 진리와 교훈을 순종하여 살고자 한다.
② 생명훈련 - 말씀훈련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을 우리속에 넘치게 하여 우리의 인격을 변화 시키는 것으로, 말씀앞에 “나”를 세우고 말씀이 “나”를 깨우치고 변화시키게 하는 것이다.
* 말씀훈련의 종류 ① 신.구약 통독훈련 ② 성경공부 훈련 ③ 말씀묵상 훈련
④ 성구암송 훈련
(2) 기도훈련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나”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께 드리며,나의 문제들을 낱낱이 아뢰며,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증보의 기도를 드리며 끊임없이 내 자신을 돌이키는 삶을 살아간다.
* 윌리암 바클레이 - 기도의 정의
①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일이다.
② 기도는 상황을 바꾸지 않고 우리를 바꾼다.
③ 기도는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처지에서 피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하여 이를 정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 기도의 능력 -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 땅위에 실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 들어오게 하는 통로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60만을 시내산 앞에서 진멸하기로 작정했으나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켜 용서하셨다. (출32장)
- 악독한 도시 니느웨 성을 40일이 지나면 멸망시키기로 정했으나 요나의 전도를 받은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 기도할 때에 뜻을 돌이켜 용서하시고 니느웨 성을 구원하셨다.
* 기도의 차원 : 하나님! 내가 말하겠습니다.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3) 금식훈련
“나”의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어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때에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내 속에 있는 죄의 요소를 씻으시도록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다.
* 금식의 종류 ① 일반금식 - 금식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오직 물만마시는 금식, (예수께서 광야에서 행하신 40일간의 금식)
② 절대금식 -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는 금식, 이 금식기간은 보통 3일간이다. (에4:6)
③ 부분금식 - 뜻을 정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일정한 음식을 금하면서 기도하는 것. (다니엘의 기도, 단1:8-16, 단10:2-3)
④ 정기적인 금식 -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한번씩 속죄일에 금식 (레23:27) 예수당시 바리새인들은 주2회 금식, 초대교회 - 수.금요일 금식.
* 금식의 목적 ①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고 교만을 깨뜨리고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행하기 위함이다.
② 회개와 참회를 위함이다. (스9:3-5, 욘3:8)
③ 죄의 사슬에서 해방받기 위함이다. (사58:6) 술, 담배, 마약, 잘못된 습관과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금식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때 가능하다.
④ 하나님께 구별하여 헌신하는 행위로서 금식이다. (행13:3)
(4) 묵상훈련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말씀이 “나”를 고치도록 “나”를 드리는 훈련이다.
*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요7: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행 조건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해야 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라도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Ⅱ. 관계 훈련 (외면화 훈련)
1. 단순화 훈련 (청빈훈련) : 마 6:19-34
단순화 훈련은 내가 소유한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원하는 곳에, 그리고 궁핍한 형제, 자매들에게 언제든지 나누어 주는 훈련으로,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직의 훈련이다.
* 누구를 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것인가? (마6:24-25)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재물(맘몬)과 하나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길수 있는 진실된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 단순화 훈련의 중심점 :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마6:33)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그 분이 나에게 무엇을 희망하고 요구하시는가를 조용히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을 향해 우리 삶의 방식을 형성해 가는 것을 뜻한다.
* 단순화의 마음가짐
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눈을 뜨라
②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일이 우리의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업을 돌보고 있다는 새로운 자각
③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내어줄 수 있다는 자유함.
* 단순화의 삶의 방식
① 탐닉하지 않고 소유에서 해방
②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필요한 이들과 나눔
③ 꾸밈없는 행동과 거짓 없는 말
④ 편견, 억압, 차별에서의 해방
⑤ 위신이나 체면보다 실용적인 생활
⑥ 자연을 사랑
⑦ 목표를 향해 한눈팔지 않고 전진!
2. 고독훈련(침묵훈련) : 전5:1-2
고독훈련은 형제, 자매들의 즐거움과 고난과 부르짖음을 듣기 위하여 “나”의 입을 닫고 귀를 열어 놓은 훈련이다.
* 고독 ꠆ꠏ 홀로 있음(Solitude) - 내적 충만의 상태
ꠌꠏ 외로움.소외(loneliness) - 내적 공허의 상태
- 홀로 있는 삶의 훈련은 의도적으로 고요한 장소에 찾아가서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 홀로있는 삶의 훈련은 우리의 혀를 길들이기 위한 것이다.
* 고독훈련의 방법
① 하루 중에 홀로 있는 시간을 활용 - 아침에 일어나서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조용히 단 몇분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짐.
② 의도적으로 한달에 한번, 또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TV.라디오.친구들 또 복잡한 시간을 떠나서 조용한 곳을 찾아감.
③ 말수가 적고 실속있는 말을 하도록 훈련하라
* 침묵은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에서 오는 것이다.
3. 순종훈련 (자기 부인의 삶) : 막8:34-38
순 종훈련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순종하는 것, 가족 식구들에게 피차 순종하는 것, 이웃에게 대한 순종, 교회공동체를 향한 순종,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순종등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명령하는 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로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 순종훈련이다.
* 순종의 삶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8:34)
* 순종의 삶은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함으로써 가능하다
예) 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 : 창12장
시몬베드로 - 눅5장
* 예수님의 생애는 섬김과 순종이었다. 자기를 부인하므로써 자유를 맛보고 자기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해방을 받았다. : “주님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8-9)
4. 섬김훈련 (봉사의 훈련) : 마6:1-4
섬 김훈련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봉사훈련으로 “나”의 판단과 결정에 근거하여 하나님과 이웃과 말씀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봉사하는 “종”됨의 훈련이다.
* 기독교의 상징
십자가 : 순종의 상징, 십자가를 지고 순종의 삶을 살때 영적 능력이 증가한다.
수건 : 봉사의 상징, 발을 씻기는 생활을 통해 영적 권위가 더해진다.
* 섬김의 종류
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섬김, 즉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섬김
② 은밀한 중에 행하는 오직 하나님앞에서 오른손이 하는것을 왼손이 모르게 행하는 섬김
* 참된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① 겸손을 배워야 한다.
② 육체의 욕구를 하나하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 오른손이 하는 것은 왼손이 모르게 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 삶의 현장에서 실현되야할 섬김의 유형
① 적은 것에서부터 신실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② 다른 사람의 명예와 덕을 존중해 주는 섬김이 있다.
③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섬김의 삶이다.
④ 다른 사람에게 일반적인 호의를 베푸는 섬김
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섬김.
⑥ 서로 짐을 나누어 지는 것.
⑦ 말씀을 나누는 섬김
* 참된 섬김의 훈련은 육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고 영이 살아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때만이 가능하며, 자기만족이 아닌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섬길 수 있는 바른 자세를 갖게된다.
Ⅲ. 공동체 훈련
공동체 훈련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훈련이다.
1. 고백훈련
- 악행의 고백은 선행의 첫출발이다. (st. Augustinus)
-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객관적인 변화가 따르고, 우리 자신 안에 주관적인 변화가 따르며,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수단이다.
꠆ꠏ 고백은 훈련인가? 은사인가?
ꠌꠏ 고백은 개인과 하나님사이에 사적 문제인가? 공동체의 문제인가? (딤전2:15, 약5:16)
- 성경은 죄의 고백과 용서를 기독교 공동체에서 실행하는 훈련으로 가르친다. - 용서의 권세 (요20:23)
꠆ꠏ 천주교 - 고해성사제도
ꠌꠏ 개신교 - 만인제사장직을 받아들이므로(벧전2:9). 그리스도인 공동체
는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백받고 죄용서를 선포할 수 있다.
고해성사의 장점 ① 활자화되고 규격화된 고백의 형식은 어떤 변명이나
정상참작을 허용하지 않는다.
② 용서하는 말이 예상되며, 절대적으로 주어진다. (요
일1:9)
③ 고행을 통하여 죄를 죄로서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도
록 돕는다. (렘44:4)
* 훌륭한 고백을 위하여 필요한 것 (성 알폰소스 루구오리)
① 양심의 성찰 - “하나님의 응시”앞에서 영혼이 골수까지 찔림을 받고 바로 잡아야 할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② 슬픔 - 죄지은 것을 혐오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깊이 후회하는 감정의 산물이기 전에 의지의 산물이다.
③ 죄를 멀리하겠다는 결단 : 거룩한 삶을 사모하고 죄에서 구조되려는 의지를 달라고, 하나님께 정복되고 통치받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백은 슬픔으로 시작되지만 기쁨으로 끝난다. 죄의 용서에는 잔치가 따른다, 결과는 참으로 변화된 삶이 오기 때문이다.
2. 예배훈련
윌리암 템플 :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양심을 촉구하고,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풍성케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목적에 뜻을 바치는 것이다”
* 예배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신령한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담이며, 아버지의 마음에서 흐르는 사랑의 제의에 대한 응답이다. (요4:23)
*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마4:10, 출20:3)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우선 순위는 봉사 보다 찬양, 감사, 경배로 정화되는 예배이다. (막12:30)
* 예배를 위한 준비 - “거룩한 기대”를 가지라(10분 일찍 예배당에 들어가시오, 영광의 왕을 경배하며 마음을 고양시키십시오. 예수그리스도에게 나타난 장엄함, 영화로움, 온유함을 묵상하십시오. 예배에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 예배의 인도자 - 성령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이 우리 마음에 들려 지게하고 그의 임재를 느끼게 하고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꾸짖고 위로하신다.
* 예배로 들어가는 길
① 인간위주의 모든 활동을 멈추라
② 찬양과 감사 (히13:15, 골3:16-17)
- 하나님은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바라신다. (롬12:1-2)
* 예배의 결과
만 일 예배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니다. 예배의 시작이 거룩한 기대라면, 그 끝은 거룩한 순종이다. (사6:8) 진정한 예배는 개인차원, 사회차원, 어디에서나 모든 악마의 세력에 대항하는 어린양의 전쟁에 가담하도록 명령하시며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다.
3. 인도훈련
이 훈련은 두가지나 그 이상의 생각, 일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택하게 도와주는 훈련이다.
꠆ꠏꠏꠏꠏꠈ
ꠐ주의ꠐ 우리 중에 누구나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예언의 능력과
ꠌꠏꠏꠏꠏꠎ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의 예언을 듣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기독교 역사의 전통과 다른 것이요, 상당한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 한 개인이 아무리 성령 충만해도 그는 사탄이나 심리적인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 할때 한 개인이 우상화 될 수 있다.
* 공동체 안에서의 인도훈련의 필요성
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거하신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에게 음성을 들려 주신다.
② 한 사람은 시험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잘못 받는 수가 있으나 여러 사람이 똑같이 시험받지는 않기 때문에 공동훈련이 필수적이다.
* 바른 인도의 증거 (행2장)
① 한마음 ② 확신 ③ 전도에 대한 열심 ④ 담대함
(성경의 표준과 유리되어서는 안된다)
* 인도훈련의 방법
①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요7:17)
②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라
③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라 - 겸손과 기다림
참된 겸손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4. 경축훈련
기독교는 축제의 신앙이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며, 부활의 기쁨을 축하하며 성경강림을 경축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구원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찬양하는것이 기독교의 출발이요 기독교의 핵심이다.
- 경축이 없는 신앙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신앙이다. (느8:10)
- 기독교인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위해 부름 받은 자이다.
- 즐거움은 성령의 열매요,(갈5:22) 주님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행하시고 구원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 경축훈련의 유익
①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 준다.
② 긴장감에서 해방 - 생기가 넘치는 삶.
③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공감대 형성
④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명약은 웃음
⑤ 자아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넒은 시야를!
⑥ 경축은 불균형을 균형있는 삶으로!
⑦ 축제는 재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⑧ 놀이하는 동안 신분의 장벽을 헐고 평등을!
⑨ 기쁨은 더 큰 기쁨으로 인도한다.
⑩ 축제의 전형 - 희년(레25:10, 겔46:17)
희년의 경축행사를 통해서 모든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탄원의 자유의 평등 이룩.
* 경축훈련의 길 - 순종
①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습성화해야 한다. (빌4:4-7)
② 여러가지 행사의 때를 축제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은 즐거워하며 경배와 찬양과 감사의 축제를 개발, 실천해야 한다.
나와 하나님과의 은밀한 가운데 나누는 교제로서,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하나님앞에 나홀로 서서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앙망하는 훈련이다.
(1) 공부훈련 (말씀훈련)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며,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하며,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신다.
* 성경말씀을 훈련하는 접근 방법
① 지식훈련 -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습득하여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의 교훈과 진리를 바로 배워 그 진리와 교훈을 순종하여 살고자 한다.
② 생명훈련 - 말씀훈련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을 우리속에 넘치게 하여 우리의 인격을 변화 시키는 것으로, 말씀앞에 “나”를 세우고 말씀이 “나”를 깨우치고 변화시키게 하는 것이다.
* 말씀훈련의 종류 ① 신.구약 통독훈련 ② 성경공부 훈련 ③ 말씀묵상 훈련
④ 성구암송 훈련
(2) 기도훈련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나”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께 드리며,나의 문제들을 낱낱이 아뢰며, 형제와 자매들을 위하여 증보의 기도를 드리며 끊임없이 내 자신을 돌이키는 삶을 살아간다.
* 윌리암 바클레이 - 기도의 정의
①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일이다.
② 기도는 상황을 바꾸지 않고 우리를 바꾼다.
③ 기도는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처지에서 피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하여 이를 정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 기도의 능력 -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 땅위에 실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 들어오게 하는 통로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60만을 시내산 앞에서 진멸하기로 작정했으나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켜 용서하셨다. (출32장)
- 악독한 도시 니느웨 성을 40일이 지나면 멸망시키기로 정했으나 요나의 전도를 받은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 기도할 때에 뜻을 돌이켜 용서하시고 니느웨 성을 구원하셨다.
* 기도의 차원 : 하나님! 내가 말하겠습니다.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3) 금식훈련
“나”의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어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때에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내 속에 있는 죄의 요소를 씻으시도록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다.
* 금식의 종류 ① 일반금식 - 금식기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오직 물만마시는 금식, (예수께서 광야에서 행하신 40일간의 금식)
② 절대금식 -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는 금식, 이 금식기간은 보통 3일간이다. (에4:6)
③ 부분금식 - 뜻을 정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일정한 음식을 금하면서 기도하는 것. (다니엘의 기도, 단1:8-16, 단10:2-3)
④ 정기적인 금식 -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한번씩 속죄일에 금식 (레23:27) 예수당시 바리새인들은 주2회 금식, 초대교회 - 수.금요일 금식.
* 금식의 목적 ①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고 교만을 깨뜨리고 하나님앞에서 겸손히 행하기 위함이다.
② 회개와 참회를 위함이다. (스9:3-5, 욘3:8)
③ 죄의 사슬에서 해방받기 위함이다. (사58:6) 술, 담배, 마약, 잘못된 습관과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금식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때 가능하다.
④ 하나님께 구별하여 헌신하는 행위로서 금식이다. (행13:3)
(4) 묵상훈련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말씀이 “나”를 고치도록 “나”를 드리는 훈련이다.
*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요7: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행 조건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해야 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라도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Ⅱ. 관계 훈련 (외면화 훈련)
1. 단순화 훈련 (청빈훈련) : 마 6:19-34
단순화 훈련은 내가 소유한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원하는 곳에, 그리고 궁핍한 형제, 자매들에게 언제든지 나누어 주는 훈련으로,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직의 훈련이다.
* 누구를 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것인가? (마6:24-25)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재물(맘몬)과 하나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길수 있는 진실된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 단순화 훈련의 중심점 :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마6:33)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그 분이 나에게 무엇을 희망하고 요구하시는가를 조용히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을 향해 우리 삶의 방식을 형성해 가는 것을 뜻한다.
* 단순화의 마음가짐
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눈을 뜨라
②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일이 우리의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업을 돌보고 있다는 새로운 자각
③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내어줄 수 있다는 자유함.
* 단순화의 삶의 방식
① 탐닉하지 않고 소유에서 해방
②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필요한 이들과 나눔
③ 꾸밈없는 행동과 거짓 없는 말
④ 편견, 억압, 차별에서의 해방
⑤ 위신이나 체면보다 실용적인 생활
⑥ 자연을 사랑
⑦ 목표를 향해 한눈팔지 않고 전진!
2. 고독훈련(침묵훈련) : 전5:1-2
고독훈련은 형제, 자매들의 즐거움과 고난과 부르짖음을 듣기 위하여 “나”의 입을 닫고 귀를 열어 놓은 훈련이다.
* 고독 ꠆ꠏ 홀로 있음(Solitude) - 내적 충만의 상태
ꠌꠏ 외로움.소외(loneliness) - 내적 공허의 상태
- 홀로 있는 삶의 훈련은 의도적으로 고요한 장소에 찾아가서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 홀로있는 삶의 훈련은 우리의 혀를 길들이기 위한 것이다.
* 고독훈련의 방법
① 하루 중에 홀로 있는 시간을 활용 - 아침에 일어나서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조용히 단 몇분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짐.
② 의도적으로 한달에 한번, 또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TV.라디오.친구들 또 복잡한 시간을 떠나서 조용한 곳을 찾아감.
③ 말수가 적고 실속있는 말을 하도록 훈련하라
* 침묵은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에서 오는 것이다.
3. 순종훈련 (자기 부인의 삶) : 막8:34-38
순 종훈련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순종하는 것, 가족 식구들에게 피차 순종하는 것, 이웃에게 대한 순종, 교회공동체를 향한 순종,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순종등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명령하는 자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로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 순종훈련이다.
* 순종의 삶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8:34)
* 순종의 삶은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함으로써 가능하다
예) 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 : 창12장
시몬베드로 - 눅5장
* 예수님의 생애는 섬김과 순종이었다. 자기를 부인하므로써 자유를 맛보고 자기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해방을 받았다. : “주님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8-9)
4. 섬김훈련 (봉사의 훈련) : 마6:1-4
섬 김훈련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봉사훈련으로 “나”의 판단과 결정에 근거하여 하나님과 이웃과 말씀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봉사하는 “종”됨의 훈련이다.
* 기독교의 상징
십자가 : 순종의 상징, 십자가를 지고 순종의 삶을 살때 영적 능력이 증가한다.
수건 : 봉사의 상징, 발을 씻기는 생활을 통해 영적 권위가 더해진다.
* 섬김의 종류
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섬김, 즉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섬김
② 은밀한 중에 행하는 오직 하나님앞에서 오른손이 하는것을 왼손이 모르게 행하는 섬김
* 참된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① 겸손을 배워야 한다.
② 육체의 욕구를 하나하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 오른손이 하는 것은 왼손이 모르게 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 삶의 현장에서 실현되야할 섬김의 유형
① 적은 것에서부터 신실한 습관을 길러야 한다.
② 다른 사람의 명예와 덕을 존중해 주는 섬김이 있다.
③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섬김의 삶이다.
④ 다른 사람에게 일반적인 호의를 베푸는 섬김
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섬김.
⑥ 서로 짐을 나누어 지는 것.
⑦ 말씀을 나누는 섬김
* 참된 섬김의 훈련은 육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고 영이 살아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때만이 가능하며, 자기만족이 아닌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섬길 수 있는 바른 자세를 갖게된다.
Ⅲ. 공동체 훈련
공동체 훈련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훈련이다.
1. 고백훈련
- 악행의 고백은 선행의 첫출발이다. (st. Augustinus)
-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객관적인 변화가 따르고, 우리 자신 안에 주관적인 변화가 따르며,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수단이다.
꠆ꠏ 고백은 훈련인가? 은사인가?
ꠌꠏ 고백은 개인과 하나님사이에 사적 문제인가? 공동체의 문제인가? (딤전2:15, 약5:16)
- 성경은 죄의 고백과 용서를 기독교 공동체에서 실행하는 훈련으로 가르친다. - 용서의 권세 (요20:23)
꠆ꠏ 천주교 - 고해성사제도
ꠌꠏ 개신교 - 만인제사장직을 받아들이므로(벧전2:9). 그리스도인 공동체
는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백받고 죄용서를 선포할 수 있다.
고해성사의 장점 ① 활자화되고 규격화된 고백의 형식은 어떤 변명이나
정상참작을 허용하지 않는다.
② 용서하는 말이 예상되며, 절대적으로 주어진다. (요
일1:9)
③ 고행을 통하여 죄를 죄로서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도
록 돕는다. (렘44:4)
* 훌륭한 고백을 위하여 필요한 것 (성 알폰소스 루구오리)
① 양심의 성찰 - “하나님의 응시”앞에서 영혼이 골수까지 찔림을 받고 바로 잡아야 할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② 슬픔 - 죄지은 것을 혐오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깊이 후회하는 감정의 산물이기 전에 의지의 산물이다.
③ 죄를 멀리하겠다는 결단 : 거룩한 삶을 사모하고 죄에서 구조되려는 의지를 달라고, 하나님께 정복되고 통치받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백은 슬픔으로 시작되지만 기쁨으로 끝난다. 죄의 용서에는 잔치가 따른다, 결과는 참으로 변화된 삶이 오기 때문이다.
2. 예배훈련
윌리암 템플 :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양심을 촉구하고,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풍성케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목적에 뜻을 바치는 것이다”
* 예배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신령한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담이며, 아버지의 마음에서 흐르는 사랑의 제의에 대한 응답이다. (요4:23)
*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마4:10, 출20:3)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우선 순위는 봉사 보다 찬양, 감사, 경배로 정화되는 예배이다. (막12:30)
* 예배를 위한 준비 - “거룩한 기대”를 가지라(10분 일찍 예배당에 들어가시오, 영광의 왕을 경배하며 마음을 고양시키십시오. 예수그리스도에게 나타난 장엄함, 영화로움, 온유함을 묵상하십시오. 예배에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 예배의 인도자 - 성령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이 우리 마음에 들려 지게하고 그의 임재를 느끼게 하고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꾸짖고 위로하신다.
* 예배로 들어가는 길
① 인간위주의 모든 활동을 멈추라
② 찬양과 감사 (히13:15, 골3:16-17)
- 하나님은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바라신다. (롬12:1-2)
* 예배의 결과
만 일 예배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니다. 예배의 시작이 거룩한 기대라면, 그 끝은 거룩한 순종이다. (사6:8) 진정한 예배는 개인차원, 사회차원, 어디에서나 모든 악마의 세력에 대항하는 어린양의 전쟁에 가담하도록 명령하시며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다.
3. 인도훈련
이 훈련은 두가지나 그 이상의 생각, 일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택하게 도와주는 훈련이다.
꠆ꠏꠏꠏꠏꠈ
ꠐ주의ꠐ 우리 중에 누구나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예언의 능력과
ꠌꠏꠏꠏꠏꠎ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의 예언을 듣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기독교 역사의 전통과 다른 것이요, 상당한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 한 개인이 아무리 성령 충만해도 그는 사탄이나 심리적인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 할때 한 개인이 우상화 될 수 있다.
* 공동체 안에서의 인도훈련의 필요성
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거하신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에게 음성을 들려 주신다.
② 한 사람은 시험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잘못 받는 수가 있으나 여러 사람이 똑같이 시험받지는 않기 때문에 공동훈련이 필수적이다.
* 바른 인도의 증거 (행2장)
① 한마음 ② 확신 ③ 전도에 대한 열심 ④ 담대함
(성경의 표준과 유리되어서는 안된다)
* 인도훈련의 방법
①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요7:17)
②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라
③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라 - 겸손과 기다림
참된 겸손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4. 경축훈련
기독교는 축제의 신앙이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며, 부활의 기쁨을 축하하며 성경강림을 경축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구원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찬양하는것이 기독교의 출발이요 기독교의 핵심이다.
- 경축이 없는 신앙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신앙이다. (느8:10)
- 기독교인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위해 부름 받은 자이다.
- 즐거움은 성령의 열매요,(갈5:22) 주님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행하시고 구원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 경축훈련의 유익
①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 준다.
② 긴장감에서 해방 - 생기가 넘치는 삶.
③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공감대 형성
④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명약은 웃음
⑤ 자아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넒은 시야를!
⑥ 경축은 불균형을 균형있는 삶으로!
⑦ 축제는 재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⑧ 놀이하는 동안 신분의 장벽을 헐고 평등을!
⑨ 기쁨은 더 큰 기쁨으로 인도한다.
⑩ 축제의 전형 - 희년(레25:10, 겔46:17)
희년의 경축행사를 통해서 모든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탄원의 자유의 평등 이룩.
* 경축훈련의 길 - 순종
①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습성화해야 한다. (빌4:4-7)
② 여러가지 행사의 때를 축제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은 즐거워하며 경배와 찬양과 감사의 축제를 개발, 실천해야 한다.
Friday, August 8, 2008
Wednesday, August 6, 2008
Monday, August 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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