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2, 2008

믿음과 중생의 인과관계

지난주 믿음과 중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열띤 토론 후, 나름대로 묵상의 시간을 갖고 느낀 바를 몇 자 적고자 합니다. 제자반 여러분과 함께 Share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선택된 우리는 중생을 받고, 믿음에 이른다는 주장에 아직도 100%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토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인과관계 안에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는 무시되고, 우리가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영생의 선물을 받는다는 성경의 말씀과 약간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점의 차이임을 이번 주 성구암송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9절에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의 Process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예비하신 구원에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하면, 중생과 영생의 선물을 받는다는 내용 같습니다. 즉, 구원의 Process는 은혜로 인해 initiate된다는 점에서는 주체가 우리의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분명해 집니다. 그에 대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할 수도 무시할 수도 있으니, 자유의지도 설명이 되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면, 선물로써, 중생과 영생을 받는다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가 설명될 수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인과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노력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9절 말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이 자연스럽게 이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준비 없이는 우리의 어떠한 믿음의 노력도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뜻 같습니다. 면벽하여 참선하는 스님들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로 풀어보면, 내가 수학문제를 풀때, 형이나 선생님이 자세히 가르쳐 주고, 나를 믿고 그대로 한번 풀어보라고 했을 때, 내가 믿고 답을 얻었다면, 이것은 나의 노력때문이 아니라, 형이나 선생님의 은혜(?, 도움이라고 해야겠죠)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나의 의지로 받아 들였으니, 기계적으로 나에게 답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요.

중생이 선행되지 않고 믿음에 의해서 중생이 된다면, 나의 의지가 너무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면, 믿음다음에 중생에 와도 나의 의지가 강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 관점은 전혀 신학적 바탕이 없는 것으로 여러분의 반론이 있을거라 느껴지고, 또 기다려 집니다. 너무 데카르트식 연역법에 근거한 저의 접근이 무모하게 느껴지는 분이 계실지 모르나, 빠른 시간안에 짧은 인간적 지식과 인간적 언어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로 부터 논쟁을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해 몇자 적어 봅니다. 여러분의 반론을 기대합니다..

2 comments:

Wozs said...

뭔가 댓글을 달아야 할것 같은 의무감에서 몇자 적습니다.

안집사님이 말씀 하신 믿음과 중생의 인과 관계에 대한 의문은 옛날에 신학자들이 고민 했던 구원 예정론과 자유의지론 사이에 논리대결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우리가 예정론을 따른다면 중생이 먼저오고 믿음이 오는게 순리에 맞을 것 같구요.

자유의지론을 따른다면 그 반대가 될것 같습니다.
자유의지론은 감리교가 채택하고 있다고 되어 있네요.

안 성균 said...

댓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