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27, 2008

주석 : 사무엘 상 15:10 - 23

=====15:10,11
사무엘의 제사권 침해 사건(13:9)에 이어 여기서는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제시된 두번째 시험, 곧 아말렉 진멸 사건에서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1절 ; 13:8-14).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 여기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즉 하나님의 후회는 당신의 어떤 특별한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여, 거기서 돌이키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29절). 이것은 다만 죄인의 거역에 대한 신적()인 슬픔을 의인법적()으로 묘사한 표현일 뿐이다(창 6:6, 7).
돌이켜서(* , 슈브) - 성경 용례상 이 말은 종종 여호와께 대한 반역 및 배교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민 14:43 ; 32:15 ; 수 22:16, 18 ; 렘 3:19). 사무엘이 근심하여 - 여기서 '근심하다'(* , 하라)란 말은 '(분노로) 타오르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 이 말은 오히려 '진노하여'로 번역함이 타당하다(창 4:6 ; 민 11:33 ; 신 7:4 ; 삼하 24:1). 아마도 이때 사무엘은 자신의 간곡한 권면(1절)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자신의 이기적 충동을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결국 왕을 세운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이 손상되고 파괴되었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거룩한
의분()을 느꼈을 것이다(Keil, Fay).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 사무엘의 이같은 태도는 왕과 백성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각오(12:23)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자신의 각오처럼 이때 사무엘은 (1) 하나님께로부터 사울의 불순종의 죄를 사죄받기 위하여, (2) 그리고 무엇보다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바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사무엘이 여호와께 부르짖는 모습은 이전에도 수차 나타나는데(7:8, 9 ; 12:18), 이로 보아 진정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 죄 용서함 받기 위해서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있으니, 곧 당사자인 그 죄인의 회개이다. 그러나 사울은 끝내 회개치 않음으로써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 한편, 유대 학자 아바르바넬(Abarbanel)은 여기서 사무엘이 사울을 위하여 그처럼 간절히 중보 기도한 것은, 사무엘이 개인적으로 사울을 그 용모와 용감성 때문에 진정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15:12
사울이...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 여기서 '자기를 위하여'란 말은 사울의 이기적 행동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한편 '기념비'(* , 야드)는 원래 '손'(hand)이란 뜻이나, 손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낼 수 있다는 효과 때문에 '기념비'란 의미로 전의()된 듯하다(삼하 18:18 ; 사 56:5). 한편 여기서는 아말렉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비()를 가리킨다. 갈멜에 이르러 - 여기의 '갈멜'(Carmel)은 헤브론 남동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서, 원래 갈렙에게 주어졌었다(수 15:55). 이곳은 또한 나발과 아비가일의 고향이기도 하였다(25:2-40). 현재의 '쿨물'(Kurmul) 지역으로 추정된다(Fay, Keil).
돌이켜...길갈로 내려갔다 - 사울이 자신의 고향이자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인 기브아(10:26)로 가지 아니하고 '길갈'로 간 까닭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이 있는 여러 곳(7:16) 중 가장 가기에 용이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1절). 한편 '내려갔다'(* , 야라드)라는 말은 길갈(Gilgal)이 요단 골짜기 저지대에 위치했었다는 지리적 특성을 잘 반영해 준다(10:8 ; 창 43:20 ; 수 16:7 ; 18:16). 즉 사울은 갈멜에서 승전비를 세운 뒤 유다 산맥을 가로질러 요단 계곡의 길갈로 향했던 것 같다(13:4). 한편 '길갈'(Gilgal)에 대해서는 수 4:19 주석을 참조하라.

=====15:13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 '여호와의 명령'은 분명 아말렉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것이었다(3절). 그러나 사울이 이같은 여호와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치 않았으면서(8, 9절), 명령을 온전히 이행한 듯 묻기도 전에 말한 것은 죄의식()의 소산이요, 외식()의 결과였다.

=====15:15
그것은 무리가...끌어 온 것인데 - 여기서 '무리가'란 말은 13절의 '내가'란 말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즉 13절에서는 자신을 내세워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다가, 이제 상황이 불리해지자 재빨리 '무리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이렇듯 진정한 회개 및 죄의 고백으로부터 점점 멀리 떠나가는 사울의 위선이 애처롭다. 이는 마치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그 죄를 하와에게 떠넘기려는 책임 전가와 다를 바 없다(창 3:12).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사울의 허락이나 묵인 없이는 결코 짐승들을 끌고 올 수 없었다(14:24-26).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남김이요 - 사울의 이 말은 거룩한 제사 의식을 빌미로 하여 자신의 범죄와 이기심을 합리화 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그러나 비록 사울이나 백성들이 짐승들을 실제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하여 진멸치 아니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짐승들을 하나님께 제사드린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바로 이같은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제사'를 빙자하여 짐승들을 진멸치 아니한 것이었다(Keil).

=====15:16
가만히 계시옵소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레프'(* )는 문자적으로 '중지하라!'(Stop!)란 뜻이다. 결국 이 말은 핑계와 변명, 책임 전가 등을 이제 그만두라는 의미로서, 사울의 구차한 변명을 더이상 듣지 않겠다는 사무엘의 확고한 의지를 반영하는 말이다.
간밤에...이르신 것 - 이 계시는 사무엘이 철야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임하신 사울에 대한 말씀인 듯하다(11절).

=====15:17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처음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려는 의사를 보였을 때에 사울이 취했던 겸손한 행동을 가리킨다(9:21). 그러나 왕위에 오르고 권력이 생기자 사울은 점차 교만한 자가 되어, 결국은 비천한 자신을 들어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의 명령까지 무시하는 패역한 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여호와께서...기름을 부어...왕을 삼으시고 - 이것은 (1)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2) 따라서 사울의 왕권은 이방의 그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온전히 실행할 의무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15:18,19
여기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달된 여호와의 신성한 명령을 사울이 전적으로 이행치 아니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사울의 주장(13, 15절)이 자기 변명과 외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길로 보내시며 - 여기서 '길'(* , 데레크)은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신성한 명령을 주어 내보낸 원정의 길을 뜻한다(Fay). 죄인 아말렉 - 여기서 '죄인'이란 말은 '아말렉' 족속들이 마땅히 진멸됐어야 할 합당한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 아말렉 족속의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을 멸절시키려 했던 죄이다(2절 ; 출 17:8-13).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 이것은 문자적으로 '탈취물에게로 날아갔다'(flew on the spoil, KJV)란 뜻이다. 이 말은 아말렉과의 전투시 사울이 아말렉의 좋은 것들을 보고 그 마음에 탐심이 생겨, 그것을 간절하고도 열정적으로 원했다는 뜻이다. 결국 사무엘의 이 말은 사울이 여호와께 제사드리기 위해 아말렉의 좋은 것들을 남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15:20
아각을 끌어왔고 - 사울은 여기서 여호와의 진멸 명령을 거역하고 '아각'을 살린 자신의 사악한 행위(8, 9절)를 전혀 죄로 인정치 않고 있다. 오히려 여호와의 명령을 좇아 아말렉과 전투를 수행했다는 그 실제적인 증거로서 아각을 사로잡아 왔다는 식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15:21
사울은 15절에 이어 여기서도 아말렉의 짐승을 진멸치 않은 자신의 범죄를, (1) 하나님의 제사를 빙자하고 (2) 또한 백성들에게 떠넘김으로써 정당화시키려 한다(15절).

=====15:22
번제와 다른 제사 - '번제'는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이다(레 1:3-17). 그리고 '다른 제사'(* , 제바힘)는 문자적으로 '희생'(sacrifices)이다. 그런데 이것은 복수로 언급되어 있다는 점에서, 번제 이외의 다른 희생 제사 모두를 가리킴이 분명하다<레위기 서론, 7.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아말렉 족속에 대한 여호와의 진멸 명령(3절)을 무시한 채, '여호와께 제사드릴 목적으로'(15, 21절) 그 족속의 가장 좋고 기름진 짐승들을 끌고 왔노라고 극구 주장하는 사울에게 사무엘이 명쾌히 선포한 이 말은, 오고오는 세대들에게 외적 의식() 행위 보다는 내적 마음의 순종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금언적()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무엘 이후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여호와께 대한 합당한 예배의 기본 자세로 거듭 강조되었다. 즉 시편 기자(시 50:8-15 ; 51:16, 17), 이사야(사 1:11-17), 예레미야(렘 6:20), 호세아(호 6:6), 미가(6:6-8), 그리고 마침내 참 선지자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사실이 다시금 확증되고 강조되었다(마 9:13 ; 12:7). 따라서 이 말씀의 핵심을 다시 요약하면, (1) 예배의 형식 보다는 예배자의 마음 자세가 더욱 중요하며(전 5:1 ; 미 6:6-8), (2)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수양의 피나 기름보다 인간의 전인격적 마음을 원하시며(시 51:17 ; 요 4:24), (3)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모든 신앙 생활의 척도가 된다(딤후 3:16, 17)는사 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 구약 시대의 모든 희생 제사 행위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그 고기를 제단 위에서 태우는 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인간이 그 행위 속에 담긴 참뜻을 깨달아,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즉 '제사'는 그림자요, '순종'은 실체인 것이다. 벧렌베르겔 성경(Berlenberger Bible)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제사(sacrifices)로는 인간이 단지 비이성적인 짐승의 고기만을 드릴 뿐이지만, 순종(obedience)으로는 인간이 자신의 뜻을 바친다. 그러므로 순종이야말로 이성적이고 영적인 제사인것이다" (Keil & Delitzsch, Vol. II-ii. p. 156). 한편, 그러나 사무엘의 이 말은 '제사'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무엘이 여기서 강조한 근본 사상은 제사 행위 속에는 반드시 순종의 자세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요, 제사로 말미암아 순종이 거부되거나 무시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말은, 후대의 예언자들이 합당한 예배에 앞서 성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를 언급하면서 많이 사용하였다(사 1:10, 11, 13 ; 렘 7:21-26 ; 호 6:6 ; 암 5:21-24 ; 미 6:6-8 ; 막 12:28-34). 수양의 기름 - 여기서 '기름'(* , 헬레브 ; fat)은 희생 제사에서 하나님께 태워지던 부분으로서, 주로 가축의 내장 및 꼬리 주위의 '기름진 부분'을 가리킨다(레 3:16, 17 ; 7:23-25).

=====15:23
사술의 죄 - 여기서 '사술'(* , 케셈)은 점()을 치는 행위를 뜻하며, 이같은 행위는 당시 이방 세계에서 보편화 되었었다(6:2 ; 민 22:7 ; 신 18:14 ; 수 13:22).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었다(렘 14:14 ; 27:9 ; 29:8 ; 겔 13:6, 23 ; 미 3:7).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우상 숭배죄로 규정되어 성경에서 절대 금지되었다(신 18:10 ; 왕하 17:17).
사신() 우상 - '사신'(* , 아웬)은 '악함', '무가치함', '허탄한 것' 등의 의미로서, 성경 다른 곳에서는 '우상'으로 번역되었다(사 66:3). 그리고 '우상'(* , 테라핌)은 중근동 사람들이 가신()으로 섬기던 우상의 한 종류인데(창 31:34, 35 ; 삿 17:5 ; 18:14),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점()을 치는 수단으로써 언급되기도 한다(겔 21:21 ; 호 3:4). 창 31:19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 여기서 '버려'(* , 이므아스카)는 미완료형이므로 미래형의 의미로 번역해야 된다는 점에서, 사울의 왕권이 머지않아 끊어질 것을 시사해 주는 단어이다. 그러나 만일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그 말씀을 제대로 좇았다면, 그의 왕권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세습될 수 있었을 것이다(13:13). 한편 여기의 '버려'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함으로써 하나님을 배척했던 그 행위를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 친히 사용하셨던 단어이다<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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